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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업계 ‘넘사벽’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라이프플래너 최고 등급인 ‘프리미엄 이그제큐티브 라이프플래너®(Premium Executive Life Planner)’에 오른 이들은 고객 수만 2,000명이 넘고, 수입은 소위 ‘걸어 다니는 중소기업’ 수준입니다. 푸르덴셜생명 1,700여명 설계사들 중에서도 단 6명밖에 없는, 상위 0.3%의 이들은 도대체 무엇이 다른 걸까요? 그 성공 비법을 오늘부터 총 6회에 걸쳐 한 명씩 소개해드립니다. 첫 번째 주인공은 업계 최초의 ‘박사 출신 설계사’, 열린Agency 홍성원 프리미엄 이그제큐티브 라이프플래너®(이하 LP)입니다.

 

 

최고가 되려면, 최고가 있는 곳으로 가라

 

조금 생소한데, ‘프리미엄 이그제큐티브 라이프플래너®’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신다면.

푸르덴셜생명에는 총 7단계의 커리어 패스(Career path)가 있습니다. 프리미엄 이그제큐티브 라이프플래너®(Premium Executive Life Planner)는 커리어 패스의 제일 마지막 단계로, 고객 수와 실적 등 여러 가지 엄격한 자격 요건들을 통과해야만 오를 수 있어요. 사실 7단계가 만들어진 것도 오래되지 않았어요. 원래는 6단계까지 있었는데 계속 거기에만 머물러있을 수는 없어서, 회사에 한 단계를 더 만들어달라고 했죠. 저를 포함해 지금까지 총 6명이 마지막 단계를 달성했습니다.

 

최근 여섯 분이 함께 모임도 만드셨다고요?

저와 같은 길을 걷는 동료가 옆에 있다는 건 정말 든든한 일이잖아요. 함께 으쌰으쌰 하자는 정서적 차원에서 모임을 결성하기도 했지만, 우리가 가진 경험과 노하우를 후배들과 공유하고 이끌어주기 위한 것도 있어요. 앞으로 전국에 있는 후배 라이프플래너®들을 찾아가 영업 노하우를 공유하고, 동기부여도 해주고, 함께 발전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찾아볼 예정입니다. 또 지난 19년간 라이프플래너®를 하며 느꼈던 것들을 책으로도 펴낼 생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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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덴셜생명 프리미엄 이그제큐티브 라이프플래너®들과 커티스장 대표

 

마지막 단계에 오른 소감은 어떠세요?

‘성취감’이죠. 또 하나의 산을 정복한 거잖아요. 인생이라는 게 산을 넘고 나면 항상 또 다른 산이 있어요. 이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되죠. 그런데 하나의 산을 넘었다고 거기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정상을 향해 나아갈 것인가에 따라 인생은 정말 많이 달라져요. 선택은 종이 한 장 차이라도, 그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로 나타나죠. 지금 이것도 끝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 2,000명이 넘는 고객과 함께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2,300명에 달하는 고객들께 보험의 가치와 보장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게 큰 의미에요. 고객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제가 그 고객과 가족들에게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잖아요? ‘2,300명*가족 수’를 해보면, 제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요. 제 직업이 가지는 무게와 책임을 항상 생각하려고 노력해요.

 

여기까지 오기까지 남다른 노력이 있었을 것 같아요.

처음 입사했을 때로 기억을 더듬어보면, 소위 ‘잘 났다’고 소문난 선배들을 따라다니며 벤치마킹 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것 같아요. 심지어 어떤 선배와는 같은 지점에 발령받으려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수를 쓰기도 했었죠.(웃음) 결국에는 같은 지점에 일하면서 그 선배가 어떻게 고객을 관리하고, 일을 하는지 배울 수 있었어요. 주어진 상황이 불만족스럽다고 불평만 할 게 아니라, 최고가 되고 싶다면 최고가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스스로 노력해보세요. 물론, 배운 것을 내재화해서 자신만의 색깔로 피워내려는 노력도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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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하지 말고, 창조하라

 

자신만의 색깔로 피워낸다고 말씀하셨는데, LP님만의 차별화 전략은 무엇이었나요?

뱀이 성장하면 허물을 벗듯이, 저 또한 저만의 색깔을 가질 필요가 있었어요. 그때 선택한 것이 박사학위 공부였어요. 일과 공부를 병행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죽을 듯이 노력했어요. 덕분에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었고, 업계 최초로 ‘박사 출신 설계사’, ‘최초의 대학교수’라는 타이틀을 달 수 있었습니다. 보험설계사라고 하면 ‘보험 아줌마’가 연상되는 한국의 보험 현실에서 저의 이력은 충분한 차별화 요소가 될 수 있었죠.

 

모자가 트레이드 마크인데, 그것도 세일즈 전략 중에 하나인가요?

사실 건강 때문에 모자를 쓰기 시작했는데요. 땀이 많은 편이라 1년 내내 감기를 달고 사는데, 모자를 쓰니까 땀이 덜 나서 감기에 안 걸리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모자’가 저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됐는데, 이젠 이걸 제 트레이드 마크로 밀고 나가고 있어요. ‘모자’ 이전에는 ‘수염’을 길러서 사람들에게 저를 각인시키려고 노력했어요. 사람들이 자신을 쉽게 기억하게 만드는 것은 영업을 할 때 분명 플러스 요소로 작용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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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수, 비영리단체 연구소장, 시간관리 강연까지 하는 일만 무려 8개가 넘는다고. 어떻게 시간 관리를 하시나요?

시간을 버는 시(時)테크의 출발은 남보다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 것에 있습니다. 일찍 일어나는 것만큼 좋은 시간관리법은 없어요. 심지어 저는 고객과의 약속을 정할 때 새벽을 이용할 때가 있어요. 성공한 사업가들은 조찬 모임과 회의가 많거든요. 시간은 정말 활용하기 나름이에요. 하루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24시간이 주어지지만,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10시간이 될 수도, 30시간이 될 수도 있어요. 저는 제가 쓴 시간에 대해서는 반드시 기록하는 습관이 있는데요. 하루 일과를 마칠 땐 버려진 시간을 점검하고, 앞으로 어떻게 개선시켜 나갈 수 있을지 생각해요. 이런 습관들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저를 만들었죠.

 

영업 비밀 한 가지만 공개해주세요.

저는 기존 고객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아요. 즉, 키맨(keyman)을 많이 만드는 거죠. 사람들은 서로 비슷한 사람들끼리 친해지는데, 부자 고객 옆에는 부자가 많고 성공한 사람 옆에는 또 다른 성공한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 사람들과 연결시켜줄 수 있는 키맨이 있다면, 제가 만날 수 있는 고객들은 무궁무진하게 많아지겠죠? 키맨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아요. 진실된 마음으로 그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면 됩니다. 감동한 고객은 전부 키맨이 되게 돼 있어요. 필연적으로요. 다수의 키맨을 확보한 사람은 그만큼 빨리 성공할 수 있어요.

 

 

나의 비전과 일치하는 회사에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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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라이프플래너®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궁금한데요.

아버지가 고혈압으로 쓰러져서 8년을 누워 계셨는데, 그 중 6년을 식물인간으로 지내다 돌아가셨어요. 그 치료비를 감당하기 위해 가지고 있는 재산을 다 팔고도 모자라, 볼펜 장사부터 식당 접시 닦기까지 안 해본 일이 없어요. 그때 생명보험에 미리 가입해놓지 않은 것을 정말 많이 후회했어요. 보험의 중요성과 가치에 대해 뼈저리게 깨닫고, 이 일을 시작하게 된 셈이죠.

 

–  그 동안 여기저기서 스카우트 제의도 많이 받으셨을 것 같은데요.

제가 19년간 푸르덴셜생명에서 일하는 것은 보험회사의 존재 이유가 ‘보험금을 지급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고, 실천하는 회사이기 때문이에요. 심지어 보험금 지급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담당 라이프플래너®가 사유서를 써야 하죠. 제가 지금까지 일하면서 48시간 이내에 보험금이 100% 지급되지 않은 적이 없는데요. 만약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면, 일찌감치 이 회사를 떠났을 거예요. 저를 믿어준 고객을 볼 면목이 없잖아요? 최고의 환경과 영혼을 가진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은 제 자부심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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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직접 피부에 와 닿게 느꼈던 사례가 있다면?

제 고객 중에 한 분이 돌아가신 적이 있었는데, 빚이 많아서 남겨진 가족들이 정말 힘든 상황이었어요. 빨리 보험금을 지급해 안정된 삶을 꾸려나갈 수 있게 해드리는 게 중요했죠. 그런데 보험금이 월요일 오전에 지급되면 은행마다 차압이 들어와서, 정작 생활에 필요한 돈은 확보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이런 사정을 회사에 얘기하면서 금요일 은행 마감시간에 맞춰 돈을 넣어달라고 했더니, 정확히 오후 5시에 입금해주더군요. 고객 한 사람을 위해 본사의 많은 직원들이 대기하고 있었던 거죠. 회사의 시스템이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바탕에 두고 있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에요. 그런 믿음이 있기에 저는 제 고객들 앞에서 언제나 당당할 수 있어요.

 

 

버티는 자가 전문가로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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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라이프플래너®를 시작한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떤 일에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눈을 뭉쳐서 산을 올라가는 일이에요. 그냥 오르기도 힘든데, 얼마나 힘들겠어요? 한국에서 보험 영업인으로 산다는 것은 거절의 삶과도 같아요. 그 과정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지쳐 떨어져 나가죠. 하지만 그걸 버티고, 인내하고, 참고 견디는 사람만이 달콤한 열매를 맛볼 수 있어요. 마침내 정상에 올랐을 때 눈을 굴리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일이 굉장히 쉬워져요. 눈덩이가 알아서 불어나고, 알아서 굴러가죠. 이 일을 하면 2년, 5년이 최대 고비인데요. 다 해봤다고, 다 안다고 자만하지 말고 끝까지 버티고 끊임없이 자신의 한계에 도전해보세요. 전문가가 오래 가는 게 아니라, 오래 해야 전문가가 되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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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들에게 공유해주고 싶은 에피소드가 있다면?

초창기에 한 분을 소개받은 적이 있는데, 주소를 보니까 강원도 동해였어요. 아주 잠깐 고민했어요. 보험료를 받는 것보다 차비가 더 나올 것 같았거든요. 그래도 고객은 소중하다는 생각으로 찾아가서, 정말 최선을 다해 설계를 해드렸어요. 결과적으로 상담 결과에 대해 굉장히 만족해하셨고, 주변 지인들을 계속 시켜주셨어요. 아까 말씀 드린 중요한 ‘키맨’ 중에 한 분이죠. 덕분에 지금은 동해, 삼척에 계신 고객이 1,000명 가까이 돼요. 재고 따지고, ‘이건 돈 안되고 힘들어서 안 할래.’라는 마음가짐으로 일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겠죠.

 

라이프플래너® 직업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이 직업은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인간의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을 지켜보며 삶의 지혜를 얻고, 인생을 배울 수 있는 일이에요. 하면 할수록 저라는 사람이 더 넓어지고, 깊어지는 걸 느껴요. 제 두 아들에게 이 직업을 권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또, 정년 없이 일할 수 있다는 것과 소득에 상한선이 없다는 것도 매력이에요. 지금 제 나이가 55세인데, 제 친구들 모두 퇴직을 앞두고 이제 뭐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어요. 하지만 이 일은 제가 할 수 있을 때까지가 정년이잖아요? 앞으로 70살까지는 거뜬히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더 깊어지고, 넓어지는 삶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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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우 지원단체인 ‘가족사랑 연구소’도 설립하셨는데요. 이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가족사랑 연구소는 제가 2004년 사재를 털어 설립한 장애우 지원단체에요. 장애우에 대한 치료비와 교육비, 생활비 등을 지원하고 있죠. 아버지 병 간호를 하면서 주변에 소외된 이웃들을 많이 보게 됐는데, 그때부터 ‘돕고 나누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연구소 설립은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첫 번째 도전이고요. 앞으로 10년 후에는 장애우 복지시설을 설립하고 싶어요.

 

라이프플래너®로서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이 일만큼 ‘롱런’이 중요한 일이 없어요. 고객들과 함께 삶을 나눠야 하잖아요. 담당 설계사를 선택할 때, 제일 중요하게 보셔야 할 것이 ‘나랑 끝까지 함께 갈 수 있는 사람이냐 아니냐’ 하는 건데요. 저는 앞으로 제 두 아들과 함께 하는 것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어요. 첫째 아들은 치과의사고 둘째는 아직 대학생인데, 둘 다 이 일을 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당장은 안 시키고, 좀 더 인생 경험을 쌓게 한 다음 가르칠 생각이에요. 어쨌든 제가 나이가 들어서 더 이상 일을 못하게 돼도 걱정 없어요. 대를 이어서 제 고객들, 그리고 고객의 자녀들까지도 끝까지 책임질 수 있으니까요.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자리에 올랐지만, ‘물은 고이면 썩기 마련이다. 아직 끝이 아니다. 끊임없이 나는 나를 발전시킬 것이다.’라는 그의 말이 아직도 머릿속에 맴돕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처럼,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된 사람들의 화려한 모습 뒤에는 역시나 뼈를 깎는 고통과 노력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는데요. 이제는 자신의 성공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려는 그에게서 ‘진정한 고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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