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올해 고희를 맞은 70세 주부, 박 할머니(1957년생). 딸(40세)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박 할머니에게는 초등학교 1학년인 손녀가 있다. 맞벌이를 하는 딸 부부를 대신해 손녀를 돌보는 ‘황혼육아족’이자, 스마트폰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소비하는 ‘스마트 시니어족’인 박 할머니. 오늘은 일찌감치 꽃단장을 하고 카페를 찾은 그녀는 친구를 기다리는 동안 스마트폰으로 화제의 신상 장난감 ‘할머니 인형’을 결제했다. 손녀와 소꿉놀이를 하기 위해서다.

전 세계적으로 몇 십 년째 지속되고 있는 저금리∙저성장 시대. 20~30대의 평균 연봉은 10년 전 대비 10% 이상 감소하였으며, 비정규직 비중은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다. 소득이 오를 것이라는 희망 없이, 없으면 없는 대로 만족하며 살고자 하는 이들은 소비 주체로서의 힘을 잃은 지 오래.

이러한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돈을 쓰는 집단은 베이비부머 세대들인 70대. 특히 손주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지갑을 열며 막강한 소비력을 과시하는 이들을 겨냥해 ‘손주 비즈니스’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날 정도. 서로 독립해 살던 핵가족이 베이비부머 세대를 중심으로 다시 모이며 대가족의 형태로 회귀하는 가운데, ‘손주 비즈니스’만이 불황을 모르는 유일한 산업으로 주목 받고 있다.

가까운 미래, 가족의 형태는 어떻게 진화할까요? 일본의 시니어 비즈니스 전문가 무라타 히로유키는 그의 저서 <그레이마켓이 온다>에서 가족의 주거 형태는 경제 사정에 따라 변화한다고 말했습니다.

경기침체와 청년층의 소득 저하, 황혼육아족의 등장은 가까운 미래 대가족화를 촉진하는 요인인데요. 이렇듯 과거의 대가족 형태를 띠는 가정이 늘면 3대가 함께 쇼핑이나 외식, 관광을 나서는 새로운 소비형태가 발생할 전망입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510만 가구가 맞벌이를 하고 있으며, 이 중 조부모가 손주 육아를 맡고 있는 경우는 50%인 250만 가구에 이른다고 합니다. 조부모가 유아용품의 주요 구매자로 급부상하면서,

업체들은 조부모가 사용하기 편한 유아용품을 잇따라 내놓고 있는 추세입니다. 아이를 안을 때 허리에 가해지는 무게를 분산시킬 수 있는 아이띠, 색깔만으로 분유 온도를 알 수 있어 할머니들이 사용하기 편리한 젖병,

아이를 목욕시키기 위해 앉았을 때 무릎 통증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는 매트 등이 그것인데요. 조부모들을 사로잡기 위한 기업들의 경쟁이 점차 치열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미국과 일본에서는 이미 손주와 함께 여행을 간다던가, 문화 공연을 관람하는 등 조부모와 손주가 함께 하는 활동인 ‘그랜드 페어런팅’ 개념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기업들은 앞다투어 이들 조부모를 겨냥한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하고 있는데요. 이를 가장 먼저 실행에 옮긴 것은 장난감 회사입니다. 일본 여자아이들의 필수 아이템으로 유명한 ‘리카 인형’은 다카라토미사가 1967년 출시한 이후, 5000만 개 이상이 팔린 스테디셀러 상품인데요.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하던 1969년에는 ‘패션 디자이너’인 엄마 인형, 주5일제가 도입된 1989년에는 아빠 인형을 내 놓으며 시대를 반영하던 그들은 작년 2012년, 56세의 ‘할머니 인형’을 출시했습니다. 리카 인형을 처음 발매한 당시 주요 타깃이었던 11세 소녀가 2012년인 현재, 56세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회사 측은 “맞벌이 부부가 늘어 조부모 손에 크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할머니와 손자 손녀가 함께 놀 때 이용할 수 있도록 할머니 역할을 할 수 있는 인형을 만들어 달라는 이들 고객의 목소리가 많았다”고 밝혔습니다. 그런가 하면, 일본 백화점협회는 각급 학교 운동회 시즌이 겹치는 매년 10월 세 번째 일요일을 아예 ‘손자의 날’로 정한 뒤 다양한 할인 행사를 펼치고 있습니다. 2011년 창간한 <손자의 힘>이라는 잡지는 조부모가 손주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장난감, 침구, 가구, 욕실용품을 판매하는 온라인 숍을 운영,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7%를 넘은 것은 이미 12년 전인 2000년의 일입니다. 2018년에는 고령사회, 2026년에는 초고령사회 진입이 예상되는데요. 이는 한국의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생)가 70대로 접어들기 시작하는 때입니다. 전체 인구의 14.3%(710만 명)를 차지하는 이들은 국내 토지의 절반에 육박하는 42%를 보유하고 있으며, 건물의 58%, 주식의 20%를 점하고 있습니다(2012년 기준).

하지만 노후 준비가 미흡하고 꾸준한 월 소득이 없다면 부동산은 보유하되 현금이 부족한 ‘고자산 빈곤층’이 되기 쉽지요. 앞으로 다가올 ‘100세 시대’, 이들이 막강한 핵심 소비층으로 등극할 수 있을지의 여부는 바로 미래를 위한 ‘준비’에 달린 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