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간격으로 공개된 영화 ‘비포’ 시리즈는 총 3편을 통해 두 남녀의 인생 중 단 3일이란 시간밖에 볼 수 없지만, 우리가 눈으로 보지 못한 생략된 그들의 인생 전체를 상상하게끔 합니다. 만남, 사랑, 이별, 재회, 다툼, 결혼, 이혼, 육아까지. 그들의 18년의 인생을 돌아보며 우리는 인생의 어디쯤 와있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거침 없는 20대, 비포 선라이즈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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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선라이즈>의 젊고 풋풋한 두 남녀, 20대의 에단호크와 줄리델피를 만날 수 있습니다.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 20대 초반의 커플을 보는 것만으로도 로맨스의 향기가 물씬 피어 오릅니다. 당시 이 영화를 접하고 ‘배낭여행의 필수 아이템: 책 한 권과 기차표’라는 환상을 가진 젊은이들이 많았습니다. 젊음이란 한눈에 사랑에 빠질 수 있는, 충동적으로 예정되지 않은 여정을 보낼 수 있는, 지키지 못할 약속에 기대할 수 있는, 그런 용기와 가능성이 가득한 시절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새로운 시작 30대, 비포 선셋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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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의 어엿한 사회인이 된 둘의 재회로 시작된 <비포 선셋>은 그들의 또 다른 인생의 시작을 알립니다. 9년 후의 재회, 다시 한번 찾아온 그들의 로맨스는 관객들에게 다시 한번 연애에 대한 환상을 심어줍니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남자와 환경운동가가 된 여자. 더 이상 혈기왕성한 20대도 아니고, 자유로운 학생의 신분도 아닌 그들은 9년이란 세월 동안, 각자 삶의 영역을 만들어 나가며 살아왔습니다. 젊은 지식인들답게 사회에 대한 불만도 많습니다. 대화의 주제도 20대 때와는 많이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어떤 큰 이벤트 없이 대화로만 진행되는 실시간 러닝타임 동안 지루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30대 중반의 그들의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기 때문일 겁니다.

 

삶에 익숙해져 버린 40대, 비포 미드나잇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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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비포 선라이즈>를 본 관객들이 40대가 된 줄리 델피와 에단 호크를 상상이나 했을까요. <비포 미드나잇>에서 보여지는 이 커플의 관계는 처음 그들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현실적으로 그려졌습니다. 중년부부로 9년만에 돌아온 그들은 여전히 사랑스러운 커플이지만 젊었을 때만큼의 낭만이나 열정은 없습니다. 대신 자녀라는 인생의 또 다른 기쁨이자, 양육이라는 현실의 부담이 그 자리를 슬며시 비집고 들어와있습니다. 서로에게 너무 익숙해진 둘은 40대 부부의 모습에서는 지난 세월의 흔적을 읽을 수 있습니다. 사랑만으로 가득 찼던 젊은 날의 전편들과는 다르게 남편의 전처에 대한 죄책감, 양육의 지친 모습, 커리어를 쌓아가는 사회인의 애환 등 우리의 현실에서 일상적으로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미묘한 감정선을 보여줍니다. 인생 좀 살았다 싶은, 영화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성인 관객층들이라면 누구나 ‘아!’ 하고 공감하게 됩니다.

 

감독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비포시리즈가 3편까지 제작하게 될 줄 몰랐다고 합니다. 시간이 흐르며 감독도 배우도 인생에 대한 태도나 생각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 모든 세월의 흐름을 영화에 반영한 만큼(실제 에단 호크와 쥴리 델피는 각본에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디테일 하나까지 공감할 수 있는 섬세한 감정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관객과 함께 배우와 감독이 같은 시간으로 나이가 들어 더욱 사랑스러운 영화. 지금 여러분의 인생은 어느 시간 앞에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