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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하루하루 내가 사는 시간이 쌓여 하나의 인생으로 완성되고 그 인생은 또 다른 사람에게 전해져 다양한 영감을 주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인지 사람들은 죽음에 이르기 직전까지 본의 아니게 변화에 맞딱드리고, 새로움을 찾아 끊임없이 방황합니다. 다시 말해, ‘Life goes on’, 인생은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영화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the best exotic marigold hotel)’은 그러한 인간의 속성을 잘 표현해 낸 영화입니다. 영국에서 각자 다른 삶을 살다 이제 황혼기에 접어든 일곱 명의 사람들을 통해서 말이죠. 남편의 죽음 이후 자식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혼자만의 삶에 도전하는 에블린, 판사에서 은퇴한 후 자신의 원래 정체성과 사랑을 찾아 떠나는 그레이엄, 공무원으로 평생 일하다 딸에게 돈을 내주고 빈털털이가 되어 쫓기듯 떠나는 더글라스 부부, 손자들만 키우며 살다 새로운 로맨스를 꿈꾸며 집을 나오는 매지, 영원히 젊은 사랑을 하길 원하는 노먼, 가족도 만들지 못한 채 부잣집 관리인을 하다 의료 목적으로 본의 아니게 영국을 떠나야 하는 뮤리엘까지.
각기 다른 곳에서 전혀 다른 일상을 보내던 이들은 어느 날, 인도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공항 의자에 나란히 앉게 됩니다. 이때부터 그들의 삶은  이전까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여행, 새로운 시작

언젠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일상의 큰 변화를 원한다면 사는 곳을 바꿔라’.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일탈의 한 행위로 여행을 택합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일곱 명의 노인들 역시 자신들의 어려운 상황을 타계하기 위해 인도행 비행기에 몸을 실습니다. 여행은 낯설기에 설렘을 가져다 주지만 두려움을 동반하기 마련. 아름다운 황혼의 삶과 여행을 꿈꾸며 도착한 인도의 혼란스러운 현실을 막상 두 눈으로 확인하고는 좌절합니다.

비행기 연착, 지저분한 도시, 돈 달라며 조르는 아이들.게다가 영국의 우아함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광고했던 더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은 허름하기 짝이 없습니다. 지저분함에 치를 떠는 뮤리엘과 더글라스 부인, 생전 경험해 보지 못한 조악함에 당황하던 이들은 조금씩 새로 맞딱드린 상황에 어렵게 적응해 나갑니다. 그럼 그 인물들의 면면을 통해 다양한 노년의 이야기들을 엿볼까요?

독립된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한 노년, 에블린
에블린은 일곱 명의 사람들 중 가장 당당한 행보를 걸어가는 여성입니다. 어렸을 적, “이제 나만 믿어”라는 남편의 청혼을 받아들이고 40년의 결혼 생활 동안 말 그대로 남편만을 믿고 살아온 에블린. 그녀는 생전 처음 인도에서 직업을 갖습니다. 또, 새로운 삶에의 단상을 블로그에 써내려가며 자신만의 생각을 관철합니다.
긴 인생의 터널을 지나왔음에도 아픔을 딛고 진정 새로운 삶을 시작한 그녀는 “오래된 습관은 쉽게 깨질 수 있다. 사람은 금세 새로운 것에 익숙해 진다”라며 새로운 삶에 적응해 나갑니다. 하지만 말처럼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또 다시 자상한 더글라스에게 조금씩 사랑을 느끼고,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사랑을 찾아 헤매는 그레이엄
어렸을 적 인도에서 부유하게 살던 그레이엄은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사랑했던 사람을 찾아 헤맵니다. 이제야 스스로를 게이라고 소개할 만큼 당당해진 그는 자신의 성 정체성이 드러나는 것도 결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어릴 적 자신의 아버지에게 드러난 성 정체성 때문에 억지로 헤어져야 했던 그를 마침내 찾고 돌아오며 그는 울면서 말합니다.
“(그가 나를 사랑한 것을 들키고 우리 집에서 쫓겨나) 항상 치욕적인 삶을 살고 있을 거라 생각했죠. 근데 내가 그렇게 살고 있었더군요.” 그제서야 완전히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솔직하지 못했던 삶을 후회하는 그는 그렇게 자신의 영혼을 하늘에 띄웁니다.
평범한 황혼기 부부의 전형, 더글라스 부부
더글라스는 30년을 넘게 공무원으로 몸바쳐 일한 자상한 남편이자 아빠입니다. 하지만 퇴직금을 딸 뒷바라지 하는데 다 쓰고보니, 손바닥만한 집 한 채 구할 돈밖에 남지 않아 부인에게 있는대로 바가지를 긁힙니다. 그래서 인도 여행을 택하는데 그 후에도 부인의 불평불만은 끊이지를 않습니다. 워낙 자상하고 유쾌한 그는 그녀를 끝까지 배려하고 달래지만 솔직히 너무 힘이듭니다.
그리고 독립적이고 이성적인 에블린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더글라스. 결국 그는 아내와 헤어지고 자신의 자상함을 온전히 받아줄 에블린과 인도에 남습니다.
로맨스를 부르짖는 두 명의 황혼, 노먼&매지
매지는 손주 둘을 키우는 데 지쳤있는 할머니입니다. ‘그랜마’라 불리며 딸이 낳은 아이들을 위해 희생하지만 제대로 대접받지 못합니다. 노먼은 제 짝이 없는 노인입니다. 그래서 젊은 이들이 나가는 선자리에 주책맞게 나가며 자신의 욕망을 서슴없이 드러냅니다. 이들이 인도를 찾는 목적은 바로 로맨스. 매지는 돈이 많은 사람을 찾아 헤매고, 노먼은 자신의 짝을 찾아 헤맵니다.
매지는 극중에서 말합니다. “로맨스도 없다면 무엇이 남나 싶어.”, “더 늙고 싶지 않아. 세상에서 버림받기도, 불필요한 사람이 되기도 싫어”. 아마도 이 말은 어떤 나이이든 사람간의 사랑만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가장 잘 일깨워주는 단 하나의 가치라는 의미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눈에 불을 켜고 사랑을 찾아 헤매던 그들은 결국 각자가 원하는 사람을 만납게 됩니다.
고집스러운 노인, 뮤리엘
자신을 돌봐줄 가족 하나 없이 병세가 악화된 뮤리엘은 결코 인도 여행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수술할 비용도 넉넉지 않은 상태였기에 인도행은 불가피한 선택이었죠. 유색인종을 혐오하는 데다 자신이 먹던 음식만을 고집하며 인도 음식에는 손도 대지 않는 결벽증 노인인 그녀는 호텔에서 요양하며 점점 변화해 갑니다. 자신의 시중을 드는 천민계급의 인도 여성의 극진한 보살핌과 애정어린 시선으로 인해서 말이죠.
늘  ‘남은 여생을 어떻게 보내는가’라는 고민을 했다는 그녀는 결국 인도에서 완전히 새사람으로 거듭납니다. 인간애를 갖추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존폐의 위기에 처했던 호텔을 살려내는 관리인으로서 말입니다. 흔히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고집스런 존재로 표현되곤 합니다. 뮤리엘은 그 전형이었지만 그 고집을 내려놓고 다양성을 받아들이자 삶이 다채로워집니다. 아마도 감독은 뮤리엘을 통해 그 메시지를 다른 이들에게도 전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영화에서 호텔은 서로의 과거를 미래로 바꿔가는 창조의 공간으로 존재합니다. 아무리 여행을 떠났다 해도 자신을 놓고 오지 않은 이상 완전히 새로운 것이란 없다는 작가 알랭 드 보통의 말처럼 그들은 이전의 고집을 쉽게 내려놓지 못합니다. 하지만 서로의 삶이 어땠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우정을 쌓아가며 과거를 치유하고 새로운 삶에 응원을 보냅니다. 또 “삶을 의무가 아닌 특권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배울 게 많다”는 그레이엄의 말처럼 인도인들의 삶의 자세를 통해 새로운 삶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노년의 삶을 다룬 영화들은 대부분 인생의 끝에 놓여있는 순간들을 묘사합니다. 사랑도 끝, 인생도 끝. 하지만 이 영화는 또 다른 시작을 이야기합니다. 에블린은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남기며 혼자 독백을 합니다. “어느 것도 예측할 수 없다. 늙어서 변화나는 것에 수치심을 느낄 필요가 있나? 매일, 매순간 최선을 다할 뿐.”
사람들은 늙으면 죽는다는 논리에 사로잡혀 끝을 생각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누구나 삶의 목표가 행복이듯, 노년의 삶 역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점점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인생이 길어지는 이때, 아마도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나의 행복을 위해 언제나 새로운 시작을 맞이할, 변화할 용기를 갖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야 ‘결국 모든 것이 괜찮을 거다’라는 인도의 격언처럼 나의 삶도 결국 행복해질 테니까요.
주디 덴치, 빌 나이, 매기 스미스 등 영국의 거장 배우들이 열연하는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 이 영화를 통해 노년의 삶을 생각하고 지금의 삶을 더욱 행복하게 할 용기를 다지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